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수천 전투 (문단 편집) == 결과 == 호수천 전투는 송나라에게 있어 큰 타격이었다. 정예병 1만 8천 명이 몰살당했고, 서하 전선에서 활약하던 장수들이 대거 전사했다. 이원호는 "짐은 위수에 몸담고 장안으로 직행하려 한다."며 기세등등했지만, 범중엄이 군기를 엄중하게 하고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진지 구축과 전술 개발 등에 주력하면서 송군이 강해지자 더 이상 밀어붙이기 힘들어졌다. 범중엄은 수비에 치중하며 정면 대결을 피했고, 이민족들의 안착에 전심을 다했으며, 1042년 마보채를 기습 공격하여 승리한 뒤 대순성을 극비리에 수축한 후 서하군 6만 명의 공세를 막아냈다. 서하군은 호수천 전투 이후에도 송군과 회전을 벌일 때마다 승리했지만, 범중엄이 수비에 전념하며 공세를 번번이 막아내자 곤란한 처지에 처했다. 게다가 송나라가 무역을 중단해버리는 바람에 식량, 포목 등 생활용품이 부족해지면서 민심이 동요했고, 민족과 계급 갈등이 심해지면서 부족민들이 저항하거나 송나라로 탈주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결국 이원호는 송나라와의 화해를 모색했고, 송나라 역시 요나라와 전쟁 중이어서 서하와 더 이상 전쟁을 벌이지 않기로 했다. 그리하여 1044년 송이 서하에게 매년 공물을 보내는 대신 서하는 송의 신하국이 되는 조건의 화약이 체결되었다. 서하의 황제는 하국왕(夏國王)에 봉해졌고, 송은 매년 비단 13만 필, 은 5만 냥, 차 2만 근을 보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